의호총의 전설
의호총의 전설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 금산(琴山)에 호랑이 무덤과 조형물이 있다.
의호총(義虎塚)이란 비석을 보면은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주천면 금산 아래에는 세상사에 초연하여 밖으로 나서지도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금처사(본명: 琴師夏)라는 학문이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처사는 부친상을 당하자 첩첩산중의 묘소 앞에 묘막을 짓고 시묘(侍墓)살이 하던 중에 그의 어머니마저 갑자기 병이 나서 생명이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다. 효자인 금처사는 약을 지으려고 읍내로 건너가는 나루터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져 칠흑 같은 밤이 되었고 때마침 장마철이라 상류에서 쏟아진 폭우로 강을 건널 수가 없어 안절부절 하며 통곡을 하자 짙은 어둠 속에서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눈 앞이 캄캄해진 금처사는 죽을 각오로 호랑이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어머님의 병환이 위급하여 강 건너 주천에 가서 약을 지어다 드려야 한다. 내가 어머니께 약을 지어다 드린 후에 나를 잡아먹던지 말던지 마음데로 하려므나”
하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호랑이는 고개를 숙인 채 꼬리를 흔들면서 금처사에게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금처사는 호랑이 등에 험한 물결을 가르며 강을 건너 약을 지은 다음에도 기다려 준 호랑이의 도움을 받아 그 약을 먹은 어머니는 병환이 완치 되었다.
그 후 금처사는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되자 다시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 시묘살이를 살았는데 강을 건너 주었던 호랑이가 찾아와서 3년 상을 함께 밤만 되면 지극한 정성으로 묘를 지켜주었다고 한다.
또 조선 19대 임금(숙종: 1674~1720)이 승하하여 국상을 당하자 충효사상이 지극한 금처사는 베옷을 입고 망산에 올라가 궁궐을 향해 절을 하며 3년 상을 보낼 때에도 호랑이는 밤이 되면 찾아와 함께 밤을 지새워 주었다한다.
그러나 숙종임금의 국상이 끝나고 그 호랑이도 늙고 병든 나머지 금처사 집 마당에 와서 쓰러져 죽자 통곡을 하며 고이 잘 묻어주고 제사까지 지내주었다 한다.
그 후 나라에서는 금처사에게 신일리 금산 주위에 있는 사방 10여리를 하사하며 그의 효행심과 충성심을 기렸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호랑이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다.
한편 금처사의 후손들에게는 금씨 가문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현몽(現夢)을 해 줌으로써 재난을 피해 갈 수 있어서 그의 가문들이 번창했다 한다.
그 후, 호랑이가 죽은 지 23년이 지난 후인 1743년 강원도 관찰사가 주천에 왔다가 이 호랑이의 충성스런 이야기를 듣고 후세 사람들에 귀감이 되라고 「의호총」이라는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