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說과有來

울고넘는 박달재

푸른 솔 / 문규열 2009. 6. 17. 06:13

 

 

                울고넘는 박달재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아 저고리에 궂은비는 졌는구려

                왕거미 집을 짖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 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충북 제천시 봉양면과 백운면 사이에는 가슴 시린 전설이 있다.

           언제들어도 가슴을 헤집고 들려오는 국민가요로

           확실하게 자리 매김되어 왔던 것처럼 그에 대한 전설 또한 애처롭다.

           아마 40대 이상이면 울고 넘는 박달재를 모른다고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 만큼 우리 가슴에 애틋한 사랑을 남기고 죽어야만 했던 슬픔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애닮은 전설은, 전설처럼 내려 오고 있다.

 

           경상도 총각 박달은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다 해가 저물어가자

           주론산 기슭 이등령, 평동리에 있는 어느 민가를 찾았다.

           하루를 유숙 하기 위함이었다.

           중후하고 늠늠하며 잘 생긴 박달은 하루를 묵어갈 집의 금붕이의

           아리따운 몸매와 고운 얼굴, 상냥한 인사말에 반한다.

           달 밝은밤, 박달은 낮에 잠깐 본 금붕이의 모습이 아른거려 잠을 이룰수가 없어서

           뜰 앞을 나가려니 금붕이가 있지 아니한가.금붕이도 똑같은 생각으로 밖으로

           나와 허전함을 달래려 했던것이다.

           둘은 사랑을 나누고 맹세 했다.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고 꼭 다시 만나기로....

           허나,박달은 한양에 도착하여 금붕이와의 하룻밤을 나눈 사랑 생각이 앞을 가려

           시험에 집중 할수가 없어서 그만 낙방하고 만다.

           박달은 면목이 없어 금붕이를 찾지를 못하고 한양에 머무르고 있을때,

           금붕이는 박달이가 떠난 뒤로 성황당에 나가 장원 급제 하고 돌아 오기만을

           빌고 빌었으나 오질 않자 상사병에 걸려 죽고 만다.

           뒤 늦게 평동을 찾은 박달은 이 사실을 전해 듣고는 금붕이의 환영을 쫓아가다

           낭떨어지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한다.

           그후 사람들은 이등령을, 두 남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박달이가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

            

           또한 박달재는 고려 시대 김취려 장군이 10만의 거란족을 물리친 전적지이다.

           1217년(고려고종4년7월)에 일어난 박달재 전투는 그 역사관 건립을 위한

           준비를 그 후손이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