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호의 의미와 유래
대한민국 국호의 의미와 유래
문 규 열
大韓民國은 고대 때 한반도에 존재하면서부터 韓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韓은 “하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늘” “크다” “칸”등의 복합적 의미도 가지고 있고, 馬韓, 辰韓, 弁韓과 같이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합한 우리고유의 큰韓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하늘의 자손임을 스스로 국호로 나타냄으로써 우주의 순리를 따른 하늘을 우러러 보는 하늘의 백성임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三韓을 합한 大韓이 이런 뜻으로 만들어 졌다면, 民國은 또 어떤 연유에서 만들어졌을까?
1919년 4월10일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에서 소집된 “임시의정원”은 국호문제를 토의했다.
이때, 大韓에다가 民國을 합한 大韓民國이라는 國號로 사용하자는 제안을 신석우가 하자, 여운형이 반대를 했다. 왜냐하면 대한제국은 조선말에 잠깐 쓰다가 망한 나라이름을 다시 쓴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데, 그 이름을 부활하여 쓸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까 대한으로 다시 흥하자"며 제국이라는 말을 공화국이라는 뜻을 가진 대한민국이라 했으면 좋겠다고 국호로 제안되어 채택한 것이었다.
바로 하늘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그 후 1948년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을 계승하여 사용한다는 헌법에 명시하게 되었고, 그해 12월에는 유엔으로부터 합법적인 주권국가임을 승인(유엔총회 결의 제195호)받은 것이다. 물론 한반도의 남쪽에는 大韓民國이,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91년에 남북모두가 유엔에 동시 가입된 합법적 주권국가로 인정받게 된 것이 되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국호로 사용되기까지는, 민족의 역사는 영광과 더불어 수난사를 함께한 격동의 시대를 겪게 되었다.
70만 년 전부터 한반도에 뿌리를 내렸다는 우리의 선조는, 구석기시대에는(약2만 5 천 년 전) 주로 해안과 강가를 중심으로 한 거주를 시작하다가, 주변세력들이 확장되면서 부터는 산간지대로 확대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고조선이라는 최초의 국가를 단군왕검이 세우게 되고(동국통감 기원전 2333), 고조선이 멸망한 후로는 부여, 옥저, 동예, 진국, 마한, 진한, 변한 등이 생겨났다가 그 이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로 이어진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으로는 발해가 형성 되기도 했다.
그 후, 10세기에는 고려가 단일국가로 이어지다가, 14세기에는 조선이 계승된 것이다.
그러다가, 1897년 고종은 朝鮮을 大韓으로 고치고, 大韓은 朝鮮을 부정하고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檀君과 其子 이래의 분립, 자웅을 다투던 여러 나라를 통합하고, 나아가서는 馬韓, 辰韓, 弁韓까지를 계승하고, 고려를 이은 조선의 유업까지 독립의 기초로 창건하여 자주의 권리를 행사하는 뜻에서 국호로 정하게 된 것이라고 황제의 頒詔文(반조문)으로 大韓國國制를 반포하였다.
이때 대한제국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청 등과의 수교를 맺으면서 자주적 진흥국가로 만들고자 했지만, 1904년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자, 일본군이 개입되면서 1905년 “을사늑약”으로 모든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고종황제는 강제로 퇴위당하면서 1910년 “한일병합”을 강제로 맺은 뒤로는 모든 국권은 빼앗기게 되었다.
그 해,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된 굴욕의 시대를 겪다가,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태동되면서부터 그 해, 4월 13일 3.1 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것이 되었다.
허지만 임시정부는 중국본토까지 침탈한 일본의 심한 방해를 받기도 하고, 독립운동을 하는 노선 갈등을 겪다가 김구, 조소앙을 중심으로 하는 광복군과 김규식, 김원봉을 세력으로 하는 “조선민족혁명당”이 극적으로 합류되면서 1943년 버마전선의 영국과 연합이 되어, 미국과도 연계한 “국내진공작전”을 준비 중일 때, 그해 8월 15일 일본은 항복을 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헌법은 3.1운동에 근거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으로 패망한 일본은 미국에 무조건 항복했지만, 얄타회담에서 미국과 소련간의 비공식 합의문에 따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신탁 통치한다는 포고령이 발표되면서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진 불운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남북이 1948년 1월부터 단독정부수립과 남북협상을 통한 정부수립 론이 치열하게 갑론을박 되다가, 1948년 2월에 북쪽에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선인민군이 창설되고, 38도선 남쪽에서는 1948년 5월 10일에 제헌국회가 탄생하여 그해 7월 17일. 헌법인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구성되고, 7월 22일에는 국회의 간접선거로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는 이시영이 선출되어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